씨알의 소리 8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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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하나님이 우주를 만들었다면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나?”
여기에 대해 옛날 어떤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청주에 있을 때 옷 한 벌을 만들었는데 옷 한 벌의 무게가 일곱 근이나 되더군”
사람은 가끔 신의 우주 창조를 문제시한다.
신의 우주 창조가 문제가 아니다. 내가 무엇을 만들고 얼마나 알며 어떤 나라를 세우고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느냐가 문제이다.
우주창조에는 흠잡을 데가 없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지 내 일이 아니다.
남의 일이 무엇인지 알기 전에 제 주머니에 얼마나 들었는지부터 셈해두기로 하자.
자기의 일이 무엇인가를 안 다음에야 비로소 남의 일이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우주 창조를 묻기 전에 나의 집부터 짓기로 하자.
음악가는 음악의 집을 짓고, 사상가는 사상의 집을 짓고, 건축가는 건축의 집을 짓고, 종교가는 종교의 집을 지어야한다.
“내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그렇지 않다고 일렀으리라”고 예수가 말했다.
사람들은 무엇을 만들어가다가 결국 하나님은 누가 만드셨을까? 하고 존재와 존재자를 혼동하여 무한을 제한하여 유한을 만들고 신을 우상으로 만드는 어리석음에 빠진다.
하나님은 누가 만든 것이 아니다. 만들어진 하나님은 표상이요 우상이지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것뿐이다. 마치 옷 한 벌의 무게가 일곱 근인 것처럼 하나님은 그저 계시는 것뿐이다.
하나님만 계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체험한 사람은 누구나 그저 있다.
그저 있다는 말은 가만있다는 말이 아니다. 생명의 약동을 느낀다는 뜻이다.
삶은 물음을 넘어선다. 물음 속에 삶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마치 잠 속에 꿈이 있듯이 물음은 결국엔 넘어서야 한다.
물음을 넘어선 삶만이 참 삶이기 때문이다. 물음을 넘어선 삶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문제가 있는 것은 아직 내가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보기>
물음은 진리를 향한 열정의 산물입니다.
그러나 물음 안에 머믈러 있어서는 진리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물음 자체에 만족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좀 더 그럴듯하고, 멋진 질문을 던지기 위해 열심히 칼을 갈고 또 갈아댑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상대가 더 이상 답을 할 수 없을 때 승리의 쾌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그들이 여전히 진리에 대해서는 무지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질문이 공격적이진 않습니다. 겸손하고, 지혜로운 질문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모양을 하고 있던지 결국 그것이 자신이 듣고 싶은 것을 확인 받고자 하는 질문이라면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심리학에서 ‘확증적 가설 검증 방략’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정보를 취득하기 전에 이미 나름대로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에 입각해서 정보를 취득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가설이 옳지 않은 경우라 할지라도 사람들은 추가된 정보, 상반된 정보로 인해 가설을 수정하기 보다는 가설에 부합하는 정보만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의 가설을 확증하려고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혈액형 별 성격 유형론에 대해 긍정적 자세를 갖고 있는 사람은 상대가 A형이라고 하면 상대를 A형의 유형에 맞추어서 판단하려고 합니다. 그 사람에게 A형의 유형에 속하지 않는 다른 특성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정보들은 무시해 버리거나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고 계속해서 상대방에 대한 A형 적인 특성의 정보만 취득하므로 자신의 가설이 점점 더 확고해 지는 것입니다. 이는 반대로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이 가능하여 스스로를 A형의 유형에 맞게 강화시키기도 합니다.
문제는 자신이나 타인이 A형의 특성이외에도 다양한 특성들이 있음에도 그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정확하고, 총체적인 이해를 못하고 편협한 사고에 빠질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좀 부연 설명이 길었습니다만..질문을 할 때도 역시 이런 심리적 기재가 작용합니다.
자신이 듣고 싶은 정보에만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지요.
그것은 결국 자신의 가설을 강화 시키기만 할 뿐 총체적 이해나 발전적 사고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바로 이런 물음의 한계, 자기 가설 강화의 한계를 극복할 때 비로서 사고의 진전이 이루어지며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성경본문> '현대인의 성경'
(요 3:1-15) 『[1] 바리새파 사람 중에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대인의 의회 의원이었다. [2] 그가 어느 날 밤 예수님께 와서 `선생님,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선생님이 베푸시는 기적을 아무도 행할 수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 그래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내가 분명히 너에게 말하지만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하고 대답하셨다. [4]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다시 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난다는 말씀입니까?' 하고 묻자 [5]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분명히 말해두지만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 [6] 육체에서 난 것은 육체이고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다. [7] 너는 다시 나야 한다는 내 말을 이상히 여기지 말아라. [8]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이와 같다.' [9] 그때 니고데모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0] 그래서 예수님이 그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 이런 것도 모르느냐? [11] 내가 사실대로 말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해도 너희는 우리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12] 내가 세상 일을 말해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늘의 일을 말한다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나 외에는 아무도 하늘이 올라간 사람이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쳐든 것같이 나도 높이 들려야 한다. [15] 이것은 나를 믿는 사람마다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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