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예교회 "더불어 성장하는 삶 공동체"

130217 깨닫는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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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닫는 은혜

(2:36-38)

 

요약 of 요약: 사람은 연약하기에 잘못을 범할 수 있지만 그것을 깨닫고 돌아서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깨닫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집니다. 내가 변할 수 있거나, 변하게 할 수 있다는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성령의 충만함을 간구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삶에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사람은 연약합니다. 연약하기 때문에 실수도 저지르고,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같은 돌에 두 번 걸려 넘어지지 않듯이 잘못을 범한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돌아서야 합니다. 그러면 새로운 길이 보입니다.

 

사업을 할 때 잘못한 것이 있을 때 그것을 바로 깨닫는 사람은 사업을 성공하게 되고, 사람관계에서 잘못한 것을 깨닫는 사람은 원만한 대인관계를 갖게 되며, 음식을 만들며 그 맛의 부족함을 깨닫는 사람은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중국의 법가 사상의 창시자인 한비자는 사람의 지혜는 앉아서 천리밖을 내다볼 수 있지만 자기 얼굴에 붙어 있는 눈썹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남의 허물과 잘못은 잘 지적하면서도 정작 자기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하고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언가 잘못되면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남의 탓을 하고, 상황 탓을 합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잘못을 범하고도 그것이 잘못인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불쌍한 일입니다.

 

그래서 많은 은혜가 있지만 그 중에서 중요한 은혜 가운데 하나는 바로 깨닫는 은혜입니다. 누구라도 잘못을 범할 수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의 삶이 복된 삶으로 나아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 어떻게 사람은 깨닫는 은혜를 얻을 수 있을까요?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을 깨닫게 하고 변화시키는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그것을 간단히 살펴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와 사도들은 성령의 임재하심을 받은 후 거리에 나와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십자가에 달려 죽인 분이 바로 메시야이십니다라는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깨달은 이들은 베드로와 사도들에게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며 탄식하며 물었습니다. 이 날에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그 마음을 돌이킨 이의 숫자가 3000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저는 이 사건을 보면서 마음을 돌이킨 3000명이 참으로 복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마음을 돌이킴으로써 하나님의 대적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동역자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마음을 돌이킬 수 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이 이전에 예수님을 몰랐거나, 복음을 듣지 못했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적을 보았고, 그 말씀을 들었던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데 앞장서간 방관했던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게 된 것입니까?

 

그 이유는 이 일이 일어나기 직전에 있었던 중요한 한 사건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120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승천 후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위해 다락방에 모여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오순절날 약속하신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였고 그들은 성령의 충만함에 취하여 거리로 나가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바로 이 때 오늘 본문의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잘못을 깨닫는 것은 이성이나, 논리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은혜로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잘못된 것이 분명하여 그것을 지적할지라도 자신의 잘못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적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도리어 화를 내고 적대시하는 감정을 들어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람의 타락한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면 마치 거센 풍랑이 치는 갈릴리 호수를 예수님이 잔잔하게 하신 것처럼 우리 안에 고삐 풀린 말처럼 날뛰는 타락한 본성을 잔잔하게 만드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요 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힘으로 다른 이의 잘못을 깨닫게 하려다 도리어 싸움을 하게 되고, 포기해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자신은 최선을 다했노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고, 문제의 모든 책임을 상대방에게 돌립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자신이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교만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요? 이해시키는 것과 변화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이해했다고 다 변하는 것은 아니니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해시키는 것도 쉽지 않은데 변화시키는 것은 또 얼마나 힘이 드는 일입니까? 남들 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 변하고 싶어도 뜻대로 이루지 못하고 실패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사가 아닙니까? 변화하려는 의지, 결단은 사람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몫이지만 변화 자체는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을 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변화시키고 싶을 때 가장 먼저 변해야 할 것은 내가 변화시킬 수 있다는 교만한 마음을 내려 놓는 변화이어야만 합니다.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그 본성이 변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본성은 죄로 인해 타락해 있습니다. 따라서 변화의 본질은 타락한 본성이 절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성을 절제시켜는 것이 이성이나 논리로 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것은 죄로 인해 오염되기 이전의 순결한 본성으로 타락한 본성을 희석시켜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럼 가장 순결한 본성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에게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써 살아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즉 가정 순결한 본성은 곧 하나님의 생기이며 이것이 바로 성령입니다. 성령은 죄로 오염되지 않은 절대청정의 영입니다. 이 거룩한 영이 타락한 본성에 공급될 때 사람 안에 있는 죄 곧 불순종과 이기심과 더러운 것들이 희석되어지며 맑아집니다. 이것이 곧 변화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깨닫게 되는 것 그로인해 변화되는 것은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성령은 분노와 두려움에 흥분한 타락한 본성을 믿음과 사랑으로 변화시키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스스로 깨닫는 자가 되거나, 다른 이에 대하여 훈계하고 잘못을 바로 잡게 하고 싶다면 먼저 여러분 자신이 성령의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함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삶의 방향을 조정하십시오.

 

그러면 성령의 역사안에서 여러분은 비록 연약함으로 잘못을 범했을지라도 곧 깨닫고 돌아서는 사람이 될 것이며, 다른 사람의 잘못을 바르게 조정하는 귀한 조언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자에게 가장 복된 삶을 살아가도록 그 삶의 길을 조성하고 계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과연 그 길로 온전히 나아갈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때로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칠 수도 있지만 성령 안에서 우리의 잘못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결국 하나님이 조성하신 복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잘아는 사울왕과 다윗왕은 전혀 다른 인생의 길을 걸어간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차이가 나타난 것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돌아서는가?의 차이였습니다.

사울왕도 다윗왕도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그들 모두 연약한 사람이라는 점에는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자신이 잘못을 범하였을 때 변명하고, 인정하지 않았지만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섰습니다. 이런 차이 때문에 한 사람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한 사람은 위대한 왕으로 남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자신의 연약함과 잘못에 민감하십니까? 저는 여러분이 이 것에 대해 민감하길 원합니다. 그것이 지금은 사소해 보일지라도 10년 후에 여러분의 삶을 전혀 다른 곳에 있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잘못과 연약함에 민감하려면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있어야 함을 잊지 마십시오.

성령의 충만함은 어떤 특별한 사람에게만 임하거나, 초자연적인 현상으로만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함이란 늘 성령에 사로잡혀 사는 삶을 말합니다. 여러분이 티비를 볼 시간에 성경을 보고, 가요를 부를 시간에 찬송을 부르며, 나의 이익을 위해 일할 때에 남을 위하여 희생하며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거룩한 영 곧 성령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러한 은혜가 날마다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