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805 관계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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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21)
우리는 지난 주에 예배의 본질에 대해 함께 나누며 예배란 ‘이기적인 나의 마음을 죽이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다시 살고자 하는 결단’을 담은 거룩한 행위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 보면 이것은 너무 부담스러운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고달픈 삶 가운데 예배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운데 그것이 죽고 사는 결단의 과정이 되어야만 한다니 어찌 마음이 편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본질을 잃어버린 예배는 더 이상 예배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오늘은 예배의 본질에 대해 좀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만해 한용운은 그의 시 ‘복종’에서 사랑하는 이를 위해 복종하는 것이 자유보다 달콤하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상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오히려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에 빠져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시의 내용을 공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사람을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습니다. 그것은 서로가 사랑하는 관계로 지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자는 서로 닮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죄를 범함으로 인해 그 관계는 깨어졌고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잃고 이기적이고 타락한 마음의 노예가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그 관계를 다시 회복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것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치심으로 여러분을 향한 사랑을 증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본문에서 (요 14:21, 현대인) 『내 계명을 간직하여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을 것이며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낼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종종 순종을 강요하는 의미로 해석되곤 합니다. 그러나 이 가르침의 진정한 의미는 여러분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지를 가르치시기 위함입니다.
‘내 계명을 간직하고 지키라’는 말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단순히 율법적으로 지키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의 의미는 한용운이 말한 ‘복종’의 의미에 더 가깝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기쁨으로 자신의 유익을 포기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은 ‘이기적인 나의 마음을 죽이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다시 살고자 하는 마음’ 의 원천이며 곧 ‘예배의 본질’ 이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예배’란 단지 ‘절차와 의식을 잘 지키는 것’ 이상으로써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의지적인 표현과 결단의 행위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 분과의 관계 회복을 간절히 원하십니까? 이것은 하나님을 통해 복 받겠다는 간절한 소원보다 더 근본적이고 우선해야 할 질문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관계가 회복되어 그 심령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가득찰 때 비로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간직하고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다시 묻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분을 기쁘게 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고 싶어질 것이며 그것은 예배로써 증명될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이에게 복종하는 것은 굴욕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에게 복종은 자유보다 기쁜 것입니다. 여러분의 예배가 굴욕이 아니라 기쁨으로 가득차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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