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예교회 "더불어 성장하는 삶 공동체"

죽어야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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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2:18, 현대인) 『가능한 최선을 다해 모든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십시다.』


'가능한 최선을 다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모든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요? 만약 거기에 '내 맘에 들지 않는 아무개를 제외하고'라는 단서를 단다면 그래도 조금은 더 실현 가능할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권고 속에는 그러한 단서조차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권면은 '가능한 최선을 다해' 외면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합니다. 


바울이 이러한 권면을 한 이유를 앞 뒤의 맥락을 통해 이해할 수 있지만 때론 그가 너무 근본주의자와 같이 글을 쓰는 스타일이 아니였는가?하는 의구심을 떨치기 힘듭니다. 


바울은 근본주의자였을까요?

만약 이 본문을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근본주의자가 아니라는 전제를 두고 좀 더 깊이 들여다 본다면 아주 흥미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과 사이 좋게 지내는 사람' 이 있을까요? 그런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단 그가 '살아 있다면' 말입니다. 그 말은 '죽은 사람'의 경우에는 바울의 권면처럼 모든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가능함을 이야기합니다.

죽은 사람에겐 아무리 욕을 해도 화내지 않습니다. 그의 것을 빼앗아도 시비를 걸어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미 죽은 사람은 아무 관계도 맺을 수 없기에 이는 무의미한 이야기로 들립니다.


그렇다면 이런 것은 어떨까요? 

'살아 있지만 죽은 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것' 말입니다.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할까요? 

실제로 바울은 말하길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라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자기의 육신을 죽인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기적이고, 타락한 자신을 죽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과 가치관을 갖기 위해 자기 중심적인 삶의 가치관과 태도를 죽이는 삶인 것입니다. 


그렇게 내가 죽고 내안에 하나님이 살게 됨으로써 나의 이기적이고 타락한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성장해 나갑니다. 이 마음이 성장할 수록 '모든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은 힘든 과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만약 바울이 스스로 날마다 자신을 죽이는 삶을 살지 않았다면 모든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은 허울좋은 가르침에 불과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만 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바라기는 나도 그와 같이 살아가길, 그러한 지도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여러분도 또한 저와 같은 마음을 품길 역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