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 들여지지 않을 때 (눅 9: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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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 들여지지 않을 때 (눅 9:51-56)
(눅 9:51-56, 개정) 『[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52]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56]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1. 착한 아이 콤플렉스
'착한 아이 콤플렉스'는 타인의 칭찬이나 인정을 얻기 위해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억제하면서 행동하는 심리적 보호기제를 말합니다. 타인을 기준으로 가치를 선택하며 살아가는 삶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선택을 하는 주된 이유는 거부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입니다.
거절당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경험입니다. 세상에 있는 노래 대부분은 사랑에 대한 노래이고, 그 노래 중 또 다수는 실연에 대한 것인데 실연이란 결국 사랑하는 사람에게 거절당할 때 느낀 고통의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얼마 전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는데 낙선한 사람들이 겪는 스트레스의 강도는 가족을 잃었을 때 겪는 것과 유사하다 합니다. 낙선은 자신의 쌓아온 삶이 대중에게 거절당한 것이기에 본질에서 실연당했을 때 느끼는 감정과 유사합니다.
이렇게 거부당하는 것은 큰 고통을 동반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착한 아이'인 척함으로써 이를 회피하려 합니다.
이 방법은 성인이 되기 전에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모범생으로서 칭찬과 사랑을 받으며 살 수 있습니다. 가끔 이 전략이 실패하여 거절당할 수도 있지만, 관계를 끊음으로써 언제든지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성인이 되면, 어린 시절의 방식이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이 클 수 있습니다. 단순한 가정이나 학교의 인간관계를 넘어서 복잡한 사회적 관계에서는 '착한 사람'이라는 개념이 모호해집니다. 예를 들어, 사채업체에서 일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회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채무자에게 강하게 독촉하여 빚을 갚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채무자에게 악독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반면, 채무자에게 친절하게 대하면 회사에서는 무능력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사회적 관계의 다양성 때문에 같은 선택이 전혀 다르게 평가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 착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성인이 되는 것은 어떤 면에서 '거절당함'에 대해 무덤덤해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착한 아이'로 자란 사람일수록, 이 과정이 더욱 가혹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모든 사람에게 착한 사람이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신념에 따라 살아갈 뿐입니다.
2. 거절당한 제자들의 분노
본문에 따르면, 예수님과 그의 일행은 사마리아인이 거주하는 마을에서 하루밤을 보내길 원했지만 거부당했습니다. 제자들은 분노하여 즉각적인 보복을 제안했으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꾸짖으시고 다른 마을로 향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왜 그렇게 분노했는지 의문입니다.
그들은 가난한 이들을 도우며, 병든 이들을 치료하고, 생명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자신들을 거부한 단지 그 이유로 마을 전체(노인과 아이들 포함)를 잿더미로 만들 것을 주장할 수 있었을까요?
이러한 모순된 태도로 볼 때, 제자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선한 행동이 진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추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선한 행동이 실제로는 예수님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거부당하지 않으려는 욕구를 멋지게 포장한 것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보여준 격렬한 분노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아마도 '착한 아이'로 인정받기 위해 억지로 억눌렀던 생각과 태도가 평소에 하찮게 여겼던 사마리아인들에게 거절당하자 마치 고삐 풀린 말처럼 제약 없이 드러났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인들이 아니라 자신의 제자들을 꾸짖으신 것은 그분이 이것을 보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착한 사람이 화를 내면 더 무서워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평소에 선한 사람으로 평가받던 이들이 갑작스럽게 제어할 수 없는 분노를 표출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교회에서 평신도로서 훌륭한 인품을 보였던 사람들이 중직을 맡은 후 분란과 다툼의 선두에 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대개 '진정으로 착한 것'이 아니라, '착한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감정을 억제하다가 특정한 계기에 폭발하는 것입니다. 거절당하는 경험은 이러한 감정 폭발이 발생하는 계기 중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여러분은 착한 사람인가요?, 아니면 착한 척만 하는 사람인가요? 이를 알아보기 위해 질문을 다르게 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거절당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셨나요?
3. 예수님의 반응
성숙한 사람은 타인의 거절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하십니까?
본문에 따르면, 분노에 찬 제자들과는 달리,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다른 마을로 가자고 제안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분노하지 않으셨는지 의문이십니까?
이는 예수님의 선한 행동이 거짓이 아닌 진실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어서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과 같은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요? 진정으로 선하게 살면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기는 어렵습니다. 예수님처럼 무소유의 정신과 완전한 자기희생으로 살지 않는 이상, 현실에서 그러한 삶을 살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거절을 두려워하며 계속해서 선한 척 살아야 할까요?
우리가 예수님처럼 완전한 선을 실천하지 못할지라도, 거절당함으로 인한 급작스러운 분노에 빠져 타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4. 거절을 대하는 성숙한 태도
예수님은 사마리아인들로부터 거절당했을 때, 이것이 자신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거나 온 세상으로부터의 거절이 아니라고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셨고, 자신을 환영할 다른 마을로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만약 자신이나 온 세상으로부터 거절당했다고 생각했다면, 제자들을 꾸짖거나 다른 마을을 찾아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발견하게 되는 성숙한 사람의 특징은 타인의 거절을 자신의 전인격에 대한 거절로 받아들이지 않고, 단지 개별 사안에 대한 거절로 인식한다는 것입니다(범위 축소). 또한, 특정인의 거절을 모두가 자신을 그렇게 대하는 것으로 확대 해석하지 않습니다(대상 축소). 반면, 거절 당했을 때 분노하는 이유는 그것을 자신의 전인격에 대한 부정으로 여기고(범위 확대), 그 사람들이 전 세계를 대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대상 확대). 이는 타당하지 않으며 근거가 없습니다. 미성숙한 사람은 이 구분을 하지 못합니다. 상대방이 특정 사안에 대해 거절하더라도 다른 사안에는 협력할 수 있고, 일부 사람들이 거절한다 해도 다른 사람들은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때, 거절은 실망스러울 수 있지만 분노할 필요는 없습니다. 즉, 성숙한 사람은 거절을 받을 때 대상과 범위를 축소해 해석하는 반면, 미성숙한 사람은 그것을 확대해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5. 주체적 인격체로 살아가기
거절을 영원한 이별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다른 협력의 기회로 볼 것인가는 전적으로 개인의 해석에 달려 있습니다. 거절의 대상과 범위를 좁힐 수 있을 때, 거절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게 되고, 거절을 피하기 위해 억지로 착한 척할 필요도 없어집니다. 그러면 비로소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충실하며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떠한가요? 거절을 두려워하며 살고 있나요, 아니면 거절을 성장의 과정으로 보고 그것을 극복할 방법을 찾고 있나요? 예수님과 제자들의 다른 반응을 보며 이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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