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망이 있습니까?
저장소/이미지맵1. 소망이 있습니까? (시편 62:5, 로마서 8:24, 에베소서 4:4))
1963년 8월 23일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의 백악관 앞에 미국 각 지역에서 수많은 흑인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백인들에 의해 짐승 취급을 받아 왔던 그들은 자신들에게도 투표권을 달라는 요구를 하며 워싱턴으로 모여든 것입니다. 수많은 흑인들이 모여들자 그들이 폭동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백인들은 긴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능한 모든 방법을 통해 흑인들이 모이는 것을 막았지만 파도처럼 밀려드는 이들을 다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흑인들이 운집했고 그들 앞에 한 남자가 섰습니다. 흑인목사 마틴 루터 킹이었습니다. 그는 청중을 향해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습니다. ‘피부색에 의해 우리의 아이들이 차별받지 않고 각 자의 재능에 따라 하나님이 주신 삶을 자유롭게 가꾸어 갈 수 있는 세상’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의 설교는 흑인뿐만이 아니라 백인들에게도 감동을 주었습니다. 폭력이 아닌 꿈을 좇아간 미국의 흑인들은 결국 백인들과 같은 투표권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이들이 투표권을 얻게 된 데에는 수많은 요인들이 작용했을 것이고,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꿈에 대한 설교와 그와 관련된 일련의 운동은 그 중 지극히 작은 일부에 불과할 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이 사건을 기억하는 이유는 ‘억압된 자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하나님의 꿈이기 때문이며, 하나님은 자신과 같은 꿈을 꾸는 이들과 함께 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시대 한국교회를 향해 꿈을 꿉니다. 그것은 사도행전의 초대교회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주인이 되는 꿈입니다. 목사나 장로가 교회의 주인이 아니며, 돈이 많고 권력을 가진 자가 교회의 주인이 아니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며 그 말씀을 배우고, 그 사랑을 나누며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신앙공동체를 이루어가는 꿈입니다.
그것은 저 혼자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이며 동시에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든 이들의 꿈입니다. 우리가 마틴 루터 킹 목사와 같이 꿈꾸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달려 갈 수 있다면 미국의 흑인들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 오늘 우리와도 함께하셔서 교회를 새롭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교회가 새로워져야 한다면 오늘 교회의 현실은 어떻기 때문입니까?
건강한 자에게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의원이 필요하다고 하시며 기꺼이 죄인과 창녀와 연약한 자의 친구가 되시고자 하셨던 예수님은 간데없고, 스스로 자기의 의를 자랑하는 자, 권세자들과 더불어 이익을 탐하는 자들로 가득합니다. 세상에서 상처받은 이들, 비난 받는 이들일지라도 회개하고 예수님께 돌아오면 모든 죄를 사하고 형제와 자매로 받아들이는 전통은 사라지고 도리어 서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으며 자신의 의만 주장하는 것이 또한 교회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꿈꾸시던 교회는 모든 사람이 서로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감싸 안으며 나의 연약함을 이해하듯 다른 이의 연약함을 이해하는 곳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의 상을 엎으시며 ‘내 아버지의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성찰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위해 절제하는 기도는 들리지 않고 자기의 의를 자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커져버린 것이 많은 교회들의 현실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똑똑한 사람이 부족해서 입니까? 물질이 부족해서 입니까? 모인 사람의 수가 적어서 입니까? 아닙니다.
교회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너무나 기본적인 성경의 가르침이 철저히 외면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인 예수님이 사라지니 예수님의 꿈도, 예수님의 사랑도 사라졌습니다. 그 자리에 온통 소동케 하는 사람의 말과 사람의 계획만 가득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님을 바지사장이 아닌 진정한 교회의 주인이 되시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꿈을 다시 꾸고, 예수님의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모여 예배하는 이유이자 목적입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62:5 11 (시 62:5, 개정)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에서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소망을 이야기합니다. 사람의 생각,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나오는 사람의 소망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소망을 기다리며 잠잠하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꿈을 다시 꾸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사람의 생각과 계획을 모두 내려놓고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봅시다. 그러면 하나님이 저에게 소망을 주셨듯이 여러분에게도 소망을 주실 것입니다. 그 소망이 모여 우리 안에 상처를 극복하고, 소망을 잃어버린 이 세대에 예수님의 꿈을 전하게 하실 것입니다.
에베소서 4:4 22 (엡 4:4, 개정)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에서 바울은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한 소망 안에서 우리는 부름을 받았노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모든 사역의 출발점입니다. 또한 바울은 로마서 8:24 33 (롬 8:24, 개정)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에서 선언하길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다’ 라고 말합니다. 그 소망은 ‘보이는’ 즉 현실적인 계산이나,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구원이란 본질적으로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을 좀 더 현실적인 언어로 표현하면 ‘오늘 우리의 삶을 지옥처럼 느끼게 만드는 모든 억압과 속박으로부터 자유함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무엇이든 여러분이 마틴 루터킹 목사와 같이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소망 가운데 있다면 어떤 문제들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주인이 되게 하는 것,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신 꿈을 우리가 함께 꾸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의 기쁨을 선포하고, 나누고, 돕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명입니다.
이 사명을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부름을 받았고, 그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꾸는 꿈이 하나님이 주신 꿈인가를 다시 점검하고 그것을 따라 가기 위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은 세상 모든 민족을 구원하라고 제사장 족속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사명을 감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새로운 제사장으로 세워 세상을 향한 구원의 사역을 이루어가도록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먼저, 그리고 교회가 먼저 바로 서야 합니다.
마틴루터 킹목사가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헌신할 때 미국이라는 나라가 변했듯이 비록 우리 각 자가 작고 그 교회가 작을 지라도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헌신하면 하나님은 세상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변화된 세상을 위해 먼저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누구든지 출신이나 신분, 소유 등 그 무엇으로도 차별하지 않게 되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통해 기쁨 안에서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게 되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이해받고 격려 받게 되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로 태어났으니 하나님 앞에 돌아가는 그 날까지 교회 안에서 돌봄과 양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저와 함께 하나님으로부터 온 한 소망을 품길 원합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 격려 받고, 담대해지며, 세상을 이기는 자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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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 62:5, 개정)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2 (엡 4:4, 개정)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3 (롬 8:24, 개정)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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