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104 믿음으로 인한 갈등
저장소/설교요약믿음으로 인한 갈등
(삼상 24:1-7)
요약 of 요약: 사람에겐 선택의 자유가 주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선택에는 불확실성이라는 요소가 있기에 많은 이들이 선택의 순간에 머뭇거리다 주변과 상황에 예속된 삶을 살아가곤 합니다. 종속적 삶이 아닌 주도적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의 관점으로 삶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때 진정으로 좋은 것을 분별하는 능력과 확신이 점차로 배양되며 선택의 불확실성은 감소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중심적인 삶의 방식을 포기해야 하기에 필연적으로 갈등의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갈등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선택하며 나아갈 때 신앙이 성장하며 자신을 속박하는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됩니다. 바로 그것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행복입니다.
새장에서 키워진 새에게 바깥세상을 향해 자유롭게 날아가게 하는 것이 새에게 복일까요? 재앙일까요? 간단히 생각하면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내던 삶에서 자유롭게 창공을 날아다닐 수 있게 됐으니 당연히 복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장 안에서 이미 주인이 주는 모이를 먹는 것에 익숙해져 스스로 벌레를 잡아본 적이 없고, 날개의 근육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제대로 날 수 없는 형편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오히려 재앙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를 원합니다. 자유의 기초는 선택의 권리입니다. 그런데 이 선택에는 반드시 그에 따르는 불확실성이 주어집니다. 구속받는 삶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이것은 불안함으로 느껴지며 비록 자유가 없어도 이제까지 살아온 틀 안에서 익숙한 반복을 하며 사는 것이 더 안정적으로 느껴집니다. 하나님이 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히브리인들을 자유케 하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때 그들은 자유의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모세를 원망하고 애굽의 삶의 그리워합니다. 몸은 자유를 얻었지만 그 정신은 여전히 구속된 삶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이 온전히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자유인이 되도록 광야 40년간 그들을 훈련시키셨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자신의 삶을 자기중심적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드려왔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자신의 삶과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이제까지 익숙했던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는 익숙함을 버리고 낯설음을 택하라는 것이기에 쉽게 동조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으로 삶을 바라보는 훈련을 하는 것은 대단히 유익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근본적으로 타락한 본성에 의존하여 살아가고 있기에 그러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한 자신의 삶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종종 ‘팔자’라는 말을 합니다. 자기가 살아온 대로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일종의 체념적인 표현입니다. 이 말이 대중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유용하게 쓰이는 이유는 타락한 본성을 극복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겐 이 단어가 더 이상 유용하지 않으며 무의미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란 자신의 타락한 본성을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으로 자신의 삶을 새롭게 가꾸어가는 삶을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어려울지라도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는 훈련을 하지 않는 것은 그저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으로만 살아가겠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관점으로 삶을 바라보는 훈련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그 유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관점으로 삶을 바라보려는 사람이 필연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은 자기중심적 관점으로 삶을 바라보던 방식과의 갈등입니다. 그 갈등의 예를 오늘 본문을 통해 간단히 살펴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블레셋과 전투를 마치고 돌아온 사울왕이 다윗이 엔게디광야에 숨어있다는 보고를 받고 쉬지도 않고 그를 죽이려고 군대를 몰고 쫓아갑니다. 그곳에서 그는 홀로 볼일을 보러 굴에 들어 마치 그 굴에는 다윗과 그의 심복들이 숨어 있었습니다. 사울왕으로 인해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왔던 다윗의 부하들은 그를 죽이라고 재촉을 합니다. 다윗도 그 말을 듣고 그의 옷자락을 칼로 베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그의 마음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자기중심적 관점으로 보면 사울왕은 즉시 죽여 마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그가 비록 자신을 괴롭히는 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운 왕이었습니다. 만약 그가 사울왕을 죽인다면 그것은 단순히 사울왕 개인을 죽인 것이 아니라 그를 왕으로 세운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 고민을 한 끝에 사울왕을 그대로 돌려보내기로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부하들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였습니다.
자신의 원수인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앞두고 그가 갈등에 빠졌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관점으로 살아갈 때 경험하게 되는 갈등의 전형적인 유형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자신의 유익에 따라 삶을 선택하고 결정할 자유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편을 선택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더 유익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매우 수동적인 태도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구속에 익숙해진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것은 오히려 두려운 일이기에 그로 말미암아 선택의 순간에 머뭇거리게 되고, 심지어 그 때를 놓치므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변과 상황이 이끄는 데로 살아가게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가장 수동적인 태도의 삶입니다. 비록 실패하는 쪽을 택할지라도 그것은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나은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그 쪽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기에 그것에 미련이 남지 않으며, 그 실패를 경험으로 다음에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으면 항상 미련이 남아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이 듭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관점으로 삶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택하고 순종하는 것이 오히려 능동적인 태도가 되는 이유는 이러한 선택의 과정을 통해서 구속에 익숙한 삶에서 자유에 익숙한 삶으로 점진적 전환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과정 속에서 자기본성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으로 삶을 바라보는 훈련을 하게 되기에 참으로 좋은 것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훈련이 된 후에 비로서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 좋은 것을 분별하는 능력도 없고, 타락한 본성에 이끌리어 살며 내리는 선택은 늘 불안함을 동반하기 때문에 선택에 주저하게 되어 주어진 자유를 포기하게 되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남의 눈을 의식하며 살며 주변과 상황에 메여 사는 노예의 삶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광야40년의 훈련이 히브리인들에게 필요했던 것처럼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주어진 자유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겠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바로 그러한 결단을 해 왔기에 결정적인 순간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볼 수있었고 그 순종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이스라엘의왕으로 세워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결단에 이르기까지 타락한 본성과 하나님의 마음으로 삶을 보는 것 가운데 치열한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이 있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겠다는 의지가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의지가 없다면 아무리 신앙생활을 해도 갈등은 경험하기 힘듭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믿음으로 인한 갈등을 삶에서 자주 경험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신앙은 건강한 것입니다. 또한 그 갈등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선택을 더 많이 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점점 더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믿음이 점점 더 성장하길 원합니다. 그 믿음은 여러분에게 주어진 자유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원천이 될 것이며 그로인해 여러분을 힘겹게 하는 모든 속박들에게서 점점 더 자유롭게 되어 평안에 이르게 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비로서 자유는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라 진정한 축복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성숙에 날마다 한 발자국씩 더 다가서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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