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519 육신의 생각과 영적인 생각 (롬8:9)
육신의 생각과 영적인 생각 (롬8:9)
여러분 중에 혹시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픈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육신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고 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럼 육신의 일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육신과 관련된 모든 일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욕심을 우선으로 여기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자기욕심을 우선으로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생명을 길을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왜 육신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을 기뻐하지 않고 원수로 여기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이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다스려지길 원하십니다.
그 나라의 가장 이상적 모형은 ‘에덴동산’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어떤 차별이나 다툼이 없고 사랑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은 아담과 하와의 욕심 때문에 에덴동산의 질서는 무너졌고 이 세상에는 온갖 고통과 불평등이 찾아왔습니다. 사람이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려 한 것처럼 사람들이 이제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자기욕심에 따라 행동하게 되었습니다. 가정이 깨어지고, 사회가 혼란하며, 국가간의 전쟁이 끊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불행에서부터 이 세상의 질서를 다시 회복하고 싶어하십니다. 그것은 다툼이 그치고 평화의 세상으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서 주어진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의 욕심을 따라 사는 삶’을 절제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던 사람이 욕심을 절제하고 원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 그래서 자기의 것으로 부족한 이들을 도와 세상의 불평등과 분쟁을 없애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자기의 욕심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절제하며 사랑과 나눔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안타깝게도 우리는 여전히 그렇게 살아가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먼저는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중심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결코 남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응급실에 들어온 환자가 돈이 없다고 수술을 거부당하는 일이 많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집니까?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어찌되던지 내가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지 돈에 관해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기중심의 관점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일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가정과 사회와 교회가 어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자기중심의 관점에서 하나님 중심의 관점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나의 이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 그래서 비록 나에겐 유익이 없고 심지어 손해를 볼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에게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그런데 이런 관점의 변화는 세상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교회에서만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조차도 자기중심의 관점이 우세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머리로는 복음을 배우지만 삶으로는 여전히 자기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살아간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감격하고, 눈물을 흘리는 목적은 우리도 그렇게 남을 위해 사랑의 삶을 살겠다는 결단이어야 함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눈물을 흘리고 감사하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서는 여전히 이기심에 가득차 살아간다면 그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화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내가 좋은 것, 편한 것, 유익이 되는 것 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사랑이 필요한 곳에 사랑을 나누고, 협력이 필요한 곳에 주어진 것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삶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자신의 욕심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절제하지 못하고 사는 이유는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머리로는 분명 아는데 막상 실천하려니 이런 저런 이유로 미루게 되고, 포기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기 전에 그 일이 일어날 것을 알고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그 때 제자들에게 깨어 예수님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셨지만 제자들은 잠을 견디지 못하고 잠들어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잠든 제자들을 보시고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라고 하시며 그들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또한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바치겠다고 맹세했지만 어려움에 빠지자 자신이 살기 위해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은 연약합니다. 이것을 누구보다 하나님이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거절하고 스스로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이것을 외식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도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연약함을 솔찍히 고백하고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셔서 그 약함을 이길 수 있도록 힘주십니다.
우리가 육신의 일을 생각하며 살아가면 그 결과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누구도 하나님과 원수가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의 욕심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아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욕심을 절제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길 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가 먼저는 여러분의 마음 속에 임하여 참된 평안과 안식을 가져다 줄 것이며, 나아가 여러분의 발길이 닺는 곳곳 마다 그러한 은혜를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그러한 은혜가 충만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