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알의 소리 7 '엉터리'
"엉터리"
형사에게 쫓기던 장발장은 도망칠 데가 없었다. 막다른 골목에서 그는 수녀 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깜짝 놀란 수녀는 그가 개에게 쫓기는 토끼라는 것을 알고 용감하게 그리고 천연스럽게 그런 사람을 본 일이 없다고 대답한다.
일평생 거짓말을 해본 일이 없는 수녀가 거짓말을 한다.
수녀가 거짓말을 할 때 수녀는 창녀가 될까? 아니다. 도리어 성녀가 된다.
수녀의 정직이 깨어질 때 그것이 부정직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직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완전한 사람에게 불완전이 나타날 때 그것에 의미가 있다.
완전이 깨질 때 완전은 불완전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완전을 넘어선다.
의식은 가끔 무의식으로 떨어질 때 초의식으로 넘어가는 수가 있다.
거짓이 참보다 더 큰 역할을 할 수가 있다.
사진보다도 그림이 더 참일 수 있다. 사진의 참은 죽은 참이다.
사실의 세계에서 인격의 세계로 넘어가는 데는 가상(假像)이 필요하다.
칸트는 그것을 이데[理念]라고 한다. 진리를 깨달았다는 말은 이데를 보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거짓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거짓 없이는 초의식에 들어갈 수가 없다.
종교가 엉터리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엉터리 없이는 보다 높은 세계에 도달할 수 없다.
가상을 진짜라고 생각하면 미신이요, 가장을 가상이라고 하면 망상이다.
그림을 사진이라고 생각하면 유치하고 그림을 거짓이라고 무시하면 어리석다.
그림은 사진보다 더 진실하다. 그것은 영원한 실재가 현상을 깨트리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현상을 깨트리고 성녀가 나타나기 위하여 거짓이라는 가상이 끼어든 것 뿐이다.
이런 거짓은 거짓이 아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한 사랑의 방편이다.
생각해보기>
우선 이 글을 읽고 거짓말을 해도 좋다는 말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관련 된 생각을 담은 글을 좀 썼는데..이번엔 그냥 각 자 생각해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다 지웠습니다.
참고 성경 구절> (현대인의 성경)
(요 2:19-21) 『[19]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 성전을 헐어라. 내가 3일 안에 다시 세우겠다.' 하고 대답하셨다. [20] 그러자 그들은 `46년이나 걸려 이 성전을 지었는데 당신이 3일 안에 세우겠다는 말씀이오?' 하고 따져 물었다. [21]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전은 자신의 몸을 가리킨 것이었다.』
<생각해보기에서 삭제되었던 부분>
"내용이 어렵지 않을 것 같아 삭제를 했었는데..본문과 연결되면서 의도한 것과 달리 어려운 질문이 된 것 같네요 ^^;"
심리학에 ‘대상관계이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론 중 간단히 한 부분을 설명하면 ‘어린 아이가 엄마의 곁을 떠나기 시작할 때 엄마의 대체물을 찾음으로써 엄마가 없어도 심리적 안정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부모와 떨어져 잠을 자기 시작할 때 많은 아이들을 베게나 인형을 안고 자는 습관을 갖습니다.
이것들은 부모의 부재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심리적 안정 기재중 하나로써 부모가 곁에 없더라도 그것들을 통해 안정감을 찾도록 도와줍니다. 이것이 심한 아이들은 캠프에 갈 때도 자신의 베게를 꼭 가져가야만 잠이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베게라는 대상을 통해 부모 특히 엄마의 존재를 느끼는 이것을 신앙적인 부분으로 확장하면 교회는 하나님을 가시적으로 대체하는 대체물의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베게가 엄마를 알게 하고 느끼게 하지만 결코 엄마의 모든 것을 반영할 수 없는 것처럼 교회는 하나님을 알게 하고, 느끼게 하지만 하나님의 모든 속성을 다 담을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 교회의 현실적 한계가 있습니다.
이 한계를 겸허히 인정하고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참 뜻을 보려 하는 사람은 건강한 신앙인입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느꼈습니다.
그러나 성전 자체가 신성시되어 우상이 되어버렸고 그로 인해 더 중요한 하나님의 뜻은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자신의 메시지와 행동을 통해 성전의 참 의미를 회복하라는 의미에서 자신이 바로 새로운 성전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교회가 지닌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교회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교회는 하나님의 대체물로 교회 없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교회에 속해 있다고 해서 교회를 완전한 곳으로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속한 교회가 진정한 교회 곧 하나님의 뜻을 더 분명히 드러냄으로써 하나님의 뜻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가꾸어야할 책임과 권리가 주어져 있습니다.